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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마라난타사 #1 [CANON M200, 15-4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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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취미 중에 하나가 카카오 맵으로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CCTV로 실시간 풍경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직도 안가본곳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뒤져보던 중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마라난타사라는 곳을 발견합니다.

위에 지도를 보고 검색을 해보니 자료가 많이 나오지는 않는데 인도에서 최초로 불교를 받은 성지 비슷한 거라고 합니다. 불교라 하기엔 제사만 지내는 상황이라 유교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기독교도 아닌지라 호기심에 한번 가보고 싶어 차키와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섭니다.

그건 핑계고.....카메라 사놓고 출사를 못 나가는 답답함에 핑계를 만들어 튀어 나갑니다.

차도 계속 단거리만 달려서 컨디션을 올려주기위하여 텅 빈 도로를 달립니다. 가는 도중 성스러운 장면이 하늘에 나타나는데 나를 맞아주는 것인가 싶은 마음에 잠깐 신기해하며 셔터를 누릅니다. 

생각 없이 달려가다 보니 위치가 영광 법성리더군요. 바로 굴비로 유명한 그 동네 맞습니다. 수산물을 거의 입에도 못 대는 저의 입장에서 그 많은 굴비 말리는 직판장을 지나오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습니다. 

여하튼 마라난타사 후문에 도착을 했습니다.

사실 도착한 곳이 후문인 줄은 몰랐습니다. 주차장은 후문 쪽에만 있나 싶기도 한데 후문 쪽으로 안내를 받았다면 위에 사진처럼 엘리베이터 탑을 볼 수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는 위에 간판처럼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라고 검색을 해야 검색이 됩니다. 지니 기준 마라난타사라고 검색하면 나오지 않더군요.

코로나 덕에 임시 폐쇄입니다.

설마 사찰 전체가 폐쇄인가 싶어서 몇 초 동안 얼어붙은 포즈로 패닉에 빠져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종교활동이 전면 금지된 상황에서 사찰 출입이 폐쇄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내려온 것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옆으로 가보니 걸어서 갈 수 있는 뒷길이 있는 듯 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멀리 서라도 볼 수 있으면 한번 보고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향해봅니다.

계단은 그렇게 많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다만 계단 입구에 굴비를 파는 가계들이 좀 있는데 굴비 말리는 냄새가 사찰 후문입구 근처까지 나더군요. 

얼마 안올라가서 바로 이런 데크로 만든 길이 나옵니다. 물이 빠질 때라 그런지 갯벌만 넓게 보입니다.
사실 바다를 보자면 서해는 일단 거르고 보는데 이렇개 물이 빠진 뻘을 보자면 도대체 어떤 부분에 포인트를 맞추고 감상을 해야 하는지 (또는 힐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데크로 만든 길이 끝나면 둘레길 같은 분위기의 길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멀리보니까 마라난타사가 보이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다행히 사찰 자체를 폐쇄하지는 않았습니다. 

멀리서도 보일 수 있도록 최초 도래지라는 큰 간판이 전면에 있습니다. 다행히 사찰 자체를 폐쇄하지는 않았지만 종교활동은 당연히 금지여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사이즈가 크지는 않고 아담합니다.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저 위에 건물이 법당인 듯싶습니다. 기도를 할 거 같은 건물이 저 건물 밖에 없습니다.

이 조형물은 무슨 의미에 조형물인지 잘 모르겠지만 딱 봐도 뭔가 인도에 조형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신기한 건 어떻게 저렇게 각기 다른 모양의 돌들을 모아서 모양을 저런 반듯한 만들어 냈을까요?

사진상으로 보면 그래도 빛이 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RAW로 찍어서 노출도를 조정해 그렇지 이미 해는 진상태라 조금 있으면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싶은 상황입니다.

저 멀리 관리동이 보이고 높은 돌기둥 위에 사자상이 보입니다. 저 건물 양식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상투를 튼 머리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인가 싶기도 한데 어찌 보면 레고머리를 좀 닮은 것도 같아 보입니다.

이제부터 법당으로 보이는 건물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보이는 것은 발자국인데 설명에는 반신상이라 쓰여있어서 의아했는데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계단 중턱에 반신상이 있더군요. 발가락마다 만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설마 저 마크를 보고 하켄크로이츠랑 헷갈리는 분이 계시지는 않겠죠;;; 

이쪽이 석가모니 부처님 반신상입니다. 돌로 어떻게 저런 조각을 할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따름입니다.
근데 이 반신상이 옛날에 만들어진 것인지 요즘에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반신상 앞에는 불전함이 있습니다.
주섬주섬 지갑에 있는 돈을 스윽 넣어봅니다.

조각들의 퀄리티를 보자면 백제시대 유물들은 아닌 듯하고 근대에 만들어진 듯합니다. 일단 그 정도 유물이 되면 이렇게 개방 자체를 하지 못했겠지 싶습니다.

법당을 지지하는 지지대에 새겨진 조각들은 우리나라 불교와 인도 불교의 분위기가 섞여 있는 느낌입니다. 저 얼굴이 두 개 달린 새는 무슨 의미가 있는 캐릭터인 듯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법당의 이름은 부용루라고 부르는 듯합니다.

부용루의 조각상들은 뭔가 석가모니에 관련된 여러 스토리를 보여주는 듯했는데 아래에 설명들이 있지만 다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읽어본다 한들 사이비 불교신자라 무슨 스토리인지 이해도 잘 못합니다.

저 왼쪽에 모습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성불에 드는 모습.... 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래에 설명이 있지만 못 읽어봐서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불전함이 또 나타납니다. 지갑을 뒤적이며 마지막 지폐를 살며시 넣어봅니다. 이 뒤쪽에 큰 부처상이 있고 위는 법당입니다.

저 위에 큰 부처상은 공사관계로 출입이 안됩니다. 공사 중이 아니었다면 저 계단을 다 올라갔을까요.... 글쎄요.

최대한 줌을 당겨봅니다. (공사 중 출입금지인데 담치기한게 아닙니다.) 뒷면도 똑같은 상이 있어서 후문 주차장에서도 저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위에 법당을 한번 올라가 봅니다. 어디 블로그를 보니까 불상을 안 모시고 목 탱화를 모시고 있다는데 올라가 보니 불상도 있었습니다. 법당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촬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한 건 아니지만 가볍게 삼배만 하고 내려옵니다.

입구 모양은 전형적인 인도 사원의 모습인 것 같은데 이런 걸 간다라 양식이라 하는 듯합니다. 

법당 아래 4방향으로 길이 뚫려있고 부처님의 출생과 연대기를 23면에 걸쳐 조각을 해놓았다고 합니다. 조각들을 보자면 이걸 현대에 만들었다 해도 보통 정성은 아니구나 싶습니다.

수이 관경 석가보살이라고 하는데 궁정 밖 농경지를 사찰하다가 땀 흘리는 농부의 모습과 벌레가 새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고 크나큰 충격에 빠져 나무 밑에 앉아서 인생가 생사문제에 대한 사색에 잠긴 모습이라고 합니다.

새는 그렇다 치고 농경지를 사찰하면서 왜 땀을 흘리는 농부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사색에 잠기신 건가요;;;;

사문 유관이라는 제목인데 위는 태자가 말을 타고 궁궐 밖으로 나가시는 장면이고 아래쪽은 동방 서북의 성문으로 나가서 노병사에 빠진 인간의 모습과 출가사문의 당당한 모습을 관찰하고 출가수행할 것을 결심하는 스토리라고 합니다. 

제가 아는 부처님이 출가하는 그 내용인 듯한데 저 내용만으로는 쉽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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